경애하는 량준호동지의 불멸의 로작—《량심의 역설과 력설》

준호21(2024)년 03월 31일 보도

량심의 역설과 력설

누구나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량심의 준거를 세우고, 그를 기반으로 하여 세상을 살아가곤 한다.

미시적으로든 거시적으로든 량심은 선악 판단의 잣대가 되며, 당장 살펴보면 하루하루 생을 살아가는 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작용되는 것이 량심의 그윽한 힘이다.

하지만 당장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외모를 가진 이 씨스템에서, 내적인 요소인 량심이 한 사람 한 사람 같으라는 법이 있던가.

례를 들어보자면, 아무리 자신이 배가 고파도 빵 한 쪼가리 훔치기 어려운 사람이 남이 굶주리는 모습을 보고 빵을 훔친다.

그는 분명 자신을 위해 빵 한 쪼가리 훔치는 것보다 굶주리는 타인을 위해 빵 한 쪼가리 훔치는 것이 더 가치있고 보람있을 것이라고, 진정한 선을 실현하는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물며 이와 같은 사례를 두고 량심이 모두에게 같은 잣대로서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미루어 볼 수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상기와 같이 량심은 사람마다 그 정도가 너무 달라, 정형화되고 객관적인 틀을 잡기에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당연히 지탄받으며 살아가는 자, 하물며 그 보다 더 최악의 행세를 밥먹듯 보이는 것들도 자기들만의 량심을 형성하며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는 인간이라는 딱지를 우리와 똑같이 붙인 체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모두의 량심의 총량과 그 기준이 다르다는 역설 아닌 역설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마음 속에 세겨야 한다.

인간 고유의 미덕으로서 작동하는 량심이,

이러한 역설 속에서도 제대로된 량심으로 걷는 길에 행복과 긍지가 있고 락관적인 래일에로의 길이 있다는 것을.

량 준 호

지금도 하늘에서 새벽이면 서울 6411번 뻐스를 타고 여의도 510호 사무실로 출근하실 그 분을 그리며,

2024년 3월 31일

대 전(끝)